글 수 734
6.15 판단 중지의 은혜 롬14:1-8
많은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찾아내 판단하고 비판할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의로워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 사람이 비판의 대상이고, 정죄의 대상이며 비판하는 자기 자신의 말이 바로 자기를 향한 말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드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십니다. 즉 ‘너희 모두가 죄인이다.’라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은 들었던 돌을 놓고 모두 돌아갑니다.
오늘 말씀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고 말씀하시며,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가 판단 받아야 될 모든 허물과 죄악들, 수치와 부끄러움과 저주와 가난과 연약함과 질고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내심으로써 우리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주시며, 의인이 되고, 온전케 되는 은혜를 부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 누구도 어떠한 사람으로부터 판단 받거나, 비판 받거나, 정죄 받아야 될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비판하지 말아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신 사람을 우리가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세우시는 권능이 오직 주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그를 사용하시는데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습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데, 하나님의 것을 감히 누가 판단하고 누가 비판하고 누가 비방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사는 곳이지 판단하고 비판하고 비방하고 헐뜯고 문제를 찾아내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면 판단하는 삶을 중지해야 될 은혜가 이미 임해있는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될까요?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판단의 눈, 비판의 눈, 정죄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은혜로 새롭게 하신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행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로 바라보시고, 좋은 목사님으로, 좋은 장로님, 좋은 안수집사님, 좋은 집사님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보여 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칭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죄인이었던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셨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화평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비판하고 판단하는 말은 끝내고 이제는 화평의 일, 평화를 도모하는 일과 그러한 말들만 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교회가 아름답게 부흥하도록, 가정이 늘 화목하도록, 모든 삶이 형통하도록,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될 줄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기 때문에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비방하거나, 성급하게 정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선하신 결과를 바라보면서 판단이나 비판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입에 판단과 비판이 완전히 사라지고 칭찬과 믿음과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고 항상 선을 좇고 그리고 용서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찾아내 판단하고 비판할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의로워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 사람이 비판의 대상이고, 정죄의 대상이며 비판하는 자기 자신의 말이 바로 자기를 향한 말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드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십니다. 즉 ‘너희 모두가 죄인이다.’라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은 들었던 돌을 놓고 모두 돌아갑니다.
오늘 말씀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고 말씀하시며,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가 판단 받아야 될 모든 허물과 죄악들, 수치와 부끄러움과 저주와 가난과 연약함과 질고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내심으로써 우리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주시며, 의인이 되고, 온전케 되는 은혜를 부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 누구도 어떠한 사람으로부터 판단 받거나, 비판 받거나, 정죄 받아야 될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비판하지 말아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신 사람을 우리가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세우시는 권능이 오직 주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그를 사용하시는데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습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데, 하나님의 것을 감히 누가 판단하고 누가 비판하고 누가 비방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사는 곳이지 판단하고 비판하고 비방하고 헐뜯고 문제를 찾아내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면 판단하는 삶을 중지해야 될 은혜가 이미 임해있는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될까요?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판단의 눈, 비판의 눈, 정죄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은혜로 새롭게 하신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행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로 바라보시고, 좋은 목사님으로, 좋은 장로님, 좋은 안수집사님, 좋은 집사님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보여 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칭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죄인이었던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셨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화평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비판하고 판단하는 말은 끝내고 이제는 화평의 일, 평화를 도모하는 일과 그러한 말들만 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교회가 아름답게 부흥하도록, 가정이 늘 화목하도록, 모든 삶이 형통하도록,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될 줄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기 때문에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비방하거나, 성급하게 정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선하신 결과를 바라보면서 판단이나 비판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입에 판단과 비판이 완전히 사라지고 칭찬과 믿음과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고 항상 선을 좇고 그리고 용서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